'척'하는 삶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 '습관'이 되는 삶
#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월20일2026 #화요일 #마태복음5장17_26절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려고 오셨다. 율법은 완전히 다 이루어질 것이기에 계명 중 어느것이라도 버리지 말고, 바르게 행하여 가르치면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의가 더 나아야 한다. 형제에게 노하지 말고, 놀리지 말고, 욕하는 자들은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에, 형제에게 잘못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그와 화목한 후에 와서 예물을 드려야 한다.
마태복음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바르게 알고, 율법의 완성을 위하여 온 나를 따르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그 율법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강조하며 가르쳤던 것이다. 어찌보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주 큰 차이가 나는 율법.
이 둘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더군다나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가 있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다.
결국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율법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구약의 말씀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문제는 이들은 마음으로부터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것 같이 겉으로만 말씀을 지키는 듯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 또한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척'하면서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척'하면서 살아가는 이들보다 더 나은 '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척'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나은 '의'는 진실함으로 행하고 율법을 삶의 습관처럼 모든 삶의 영역에서 반응하며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해도 살기 힘들다.
이것은 마치 불교에서 자신을 비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고행을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자신을 비우는 것은 불가능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워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를 채워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하나님께 뜻하심에 따라 창조의 목적에 따라 지음 받은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워서도 안되고, 비울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우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임재하기를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면, 말씀이 내안에 머물러, 말씀에 대한 습관적인 반응의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 나는 항상 주님 앞에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예수님 앞에 서 있다는 생각으로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살아간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로운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허락 해 주셨는데, 이 하루의 삶이 의미없는 삶이 아니라, 무엇을 하듯 주께 하듯 하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말과 생각과 행함에서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아낼 때, 그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줄 믿는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척'하며 살지 않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제가 '척'하는 삶이 아니라, 제 안에 말씀이 역사하여 말씀에 대한 반응이 습관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도 성령 하나님으로 채워주시고, 말과 생각과 행함에 있어서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