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따라쟁이의 삶이 사랑하는 삶이다
#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월2일2026 #금요일 #요한일서2장1_11절
요한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서신을 받는 이들이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오신 화목제물이시다. 예수님을 아는 자들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고,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어 그의 안에 있는 자이다. 빛 가운데 있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요,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는 자요,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요한일서 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나를 닮아가는 삶은 사랑하는 삶이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다 믿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부분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지 이것만을 믿는다고 해서 내가 그리스도인인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함을 말씀해 주시는 것 같다.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을 지키지 않는 모습,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은 불가능한것 이라고 요한이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을 지키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동일한 것이라고 알려주신다. 예수님께서 새계명을 주셨을 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으니, 사랑은 계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사랑이란?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5절에 보니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결국 2가지가 내 삶에서 드러나야 함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 온전해 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첫째는 말씀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알아야 하고,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읽고, 연구를 해야 한다. 목회자인 나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성도들에게 성경공부를 시키기 위한 말씀 연구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안에 온전하게 거하기 위해서 말씀을 먼저 알아야만 하기에 읽고,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나 또한 올 해 말씀을 통독을 결단해 본다.
둘째는 읽고, 연구한 말씀들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실천이 없는 앎은 사랑으로 연결될 수 없다. 오히려 남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즉 미워할 수 있는 도구이 최적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먼저 말씀을 읽으면서 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 왜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지, 예수님이라면 이런 마음이 들 때 어떻게 하셨는지를 말씀을 통해 찾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하심을 본받는, 다시말해 그분이 십자가에서 왜 어떻게 나를 용서해 주셨는지를 먼저 생각하여, 나도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기도해 보기로 결단한다.
내 생각은 내가 가장 소중하기에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니 내 생각이 아닌, 예수님의 생각으로 다른 이들을 대하게 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실천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때 예수님의 행함을 찾아 그분의 삶을 따라하는 하루로 살아보기로 한다.
사랑의 주님. 예수님을 따라 할 수 있는 따라쟁이가 되길 원합니다. 제 생각과 경험은 다른 이들을 사랑하기 보다 미워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그 말씀이 정죄의 도구로 사용이 되어지니, 단지 읽은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예수님의 행하심을 본받아 따라함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오늘을 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