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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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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나를 본받는 삶을 살라 말할 수 있는가?

#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5월18일2026 #월요일 #고린도전서4:9-21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때문에 온갖 고난을 겪고 만물의 지꺼기같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가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고 하는 것이라 말하며, 그들에게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 한다. 또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면서 디모데를 통하여 바울이 그리스도에 예수 안에서 행한 모든 것들이 생각나게 하려고 한다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 한다. 


고린도전서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너는 성도들에게 너 자신을 본받으라 말할 수 있니?" 주님이 물으신다. 


목회를 하면서부터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오늘의 말씀이다.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고린도성도들에게 말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완전하고 온전한 분이 안계신데, 어떻게 연약한 인간임에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었을까? 교만해서 그랬을까? 아니다. 


바울은 교만해서 자신을 본받으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었고, 약하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을 때에도 참고, 비방을 받으나 권면하고, 모욕을 당한즉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을하고 있는데, 누가 자신을 본받으려고 할까. 


하지만, 자신은 영적인 아버지라고 말을 한다. 그들을 복음을 낳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치뤄주셨다면,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이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 끝까지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전하는 삶을 살았다. 마치 세상에서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굳은일 험한 일은 다 하시는 부모님과 같이 말이다. 


자기 자신은 살려보겠다고, 온갖 어려움을 다 당하지만, 자녀들이 바른길로 가기만 한다면 괜찮다는 듯이 말이다. 


오늘 바울의 마음을 다시한번 느껴본다. 

나는 어떤 목회자인가? 세상의 지식만을 가르치는 일만 스승과 같은 자인가? 아니면 영적인 아버지로서의 목회를 감당하면서 성도들을 위해 복음이 심겨지도록 바울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이에 상관없이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우리 가족에게 바울이 말했던 것 처럼,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는가? 를 생각해본다. 


이전에는 찬양하는 그 모습만큼은 나를 본받으라 말도 했고, 설교도 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단지 어떤 한 모습만이 아니라, 내 삶 전부를, 그리고 성도님들을 생각하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으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바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 안에 있는지, 내 삶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 것 같다. 


세상의 일만 스승이 아니라, 영적인 스승이 되고, 영적인 스승을 넘어 영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은 내가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오늘도 이 아침에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고, 바울을 닮아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하루를 살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누군가에게 감히 나를 본받으라 말하는 것은 교만한 모습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삶에 있어서 목회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에게나 당당한게 이 말을 할 수 있는 성령충만한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그런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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