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드러내는 삶 vs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
#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월11일2026 #주일 #요한삼서1장1_15절
요한이 가이오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 요한은 가이오가 진리를 행한다는 소식에 기뻐한다.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라 하며, 디오드레베가 행한 일과 같이 비방하고 형제를 맞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맞아들이고자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 쫓는일이 옳지 않다 한다. 성도는 선한 것을 본받아야 하고,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뵙지 못한다 한다. 디오드레베와는 달리 데메드리오는 선한 자임을 증언한다.
"나에게도 사람에게도 선한자로 증언받는 삶을 살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오늘 말씀에는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라는 두 사람이 상반된 모습이 있음을 요한이 말하고 있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이 교회에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며, 그의 행함은 선하지 못한 일들을 하였고,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 선한 일을 하는 이였음을 볼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악한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말씀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악한일의 중심에는 비방하는 말과 자신이 드러나기를 좋아하는 모습이 있음과 동시에 시기와 질투의 행동들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사람들로부터 선한 사람임을 증언받는 이들도 있는데, 그는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는다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요구하는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기준 앞에서 검증을 통과했다는 뜻이 된다.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라, 복음이 삶으로 녹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앞에 나를 비추어본다. 나는 인간적인 열심으로 사람들에게 드러나기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때로는 인간적인 욕심이 들 때가 있음을 본다. 그렇기에 오늘 주일 아침 주님께서는 나를 먼저 회개시켜주신다. 내가 나를 인정받기 위해 무엇을 하면 결국, 나의 욕심까지도 다 드러난다. 하지만, 내가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드러나기를 위한 열심이라면 선한 영향력이 드러나게 됨을 깨닫게 하신다.
오늘 거룩한 주일이다. 나는 나를 위한 열심으로 살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낼 것이가? 물론 후자의 삶을 살아내기로 결단한다. 내게 허락된 은혜의 삶을 오늘도 살아냄으로 내 안에 선한 영향력만이 드러나길 소원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영혼이 먼저 잘되어야 하고, 그 때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질 줄 믿는다.
사랑의 주님. 제가 복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내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나를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나를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는 삶 살겠습니다. 오늘도 성령 하나님께서 저와 어스틴 안디옥 교회의 주인이 되어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