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2월9일 #금요일 #전도서1장1_11절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이야기함으로 시작한다. 해 아래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없고, 만물은 피곤하고 족함이 없고, 이전에 있었던 것들의 반복이 계속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전도서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에게서 난 것은 결국 헛된것으로 시작하여 헛된 것으로 끝이 나지만,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에 헛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왜 오늘 전도자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을까? 특별히 8절에는 보아도 족함이 없는 눈, 들어도 가득차지 아니한 귀를 말하면서 세상의 어떤 것에도 만족함이 없기에 헛되다고 한 것 같다.
또 자연을 보고서는 반복되는 자연의 이치는 항상 늘 반복이 된다고 말을 하는 것으로 헛됨을 이야기 하고, 인간에게서도 과거의 일이 현재에도 반복될 때, 새것이라고 할 것이 없음에 헛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도자는 새로운 것이 없는 일상과 반복되는 모든 역사와 자연들에게서는 그 어떤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기에, 수고와 노력이 헛되다고 하는데, 그 수고와 노력이 자신들 스스로에게서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에게 새로움이라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에게 헛되지 아니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국 피조물들은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 삶이 지루함의 반복이라고 생각을 했을 때가 있었다. 물론 그 때에도 해 보지 않았던 일도 해 볼 때가 있었고, 가지 않았던 곳을 찾아 가보기도 했다. 삶의 변화를 이루고자 노력을 안 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단지 변화일 뿐, 새로운 창조는 아니었다. 변화는 순간적인 만족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느덧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고, 그 변화가 일상이 되어버리는 순간 다시 또 다른 변화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새롭게 되는 창조는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일어날 수 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경우, 이것은 영적인 세상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있어야 한다.
듣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는 경우, 이것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있어야 한다.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 할 수 있는 경우, 이것은 성령께 내 입을 맡겨 드릴 때 가능한 것이다.
내 안에 내가 새로와 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머무를 때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새로와 보인다.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다르게 적용이 되고, 말씀이 삶이 되기에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달라진다.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고, 좀 뭔가 다른 일상을 원하고 있다면, 내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 없기에 여전히 옛 모습이 그대로 내 안에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에게는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지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루를 살기를 결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없애야 할 생각과 말이 있다. 혹시 오늘도 내가 "에이~ 이런걸 뭐하러해. 다 헛수고야.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어짜피 다 똑같은 결과일텐데..."라고 생각하며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있다면 회개하자. 그리고 다시 내가 왜 그것을 하는지, 내게 주어진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묻고, 영적인 눈과 귀와 입술을 허락해 주심으로 새롭게 되는 체험을 구하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헛된 나의 인생이 아닌 매일이 새로운 인생으로 주님이 나를 창조하신 것을 믿습니다. 내 안에 영적인 눈,귀,입술을 통해 헛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