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사큐티 #6월15일 #화요일 #출애굽기 26:1-14
여호와 하나님이 성막 앙장(덮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 첫번째 덮개는 천연색실에 천사들을 수놓은 아름다운 모습이고, 두번째 덮개는 염소털로 짠 세마포, 세번째는 붉은 색으로 물들은 수양의 가죽, 마지막 네번째 덮개는 회색빛의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라고 말씀을 하신다.
출애굽기 26:1 "너는 성막을 만들되..."
"성막을 덮는 4장의 덮개를 통하여 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이 말씀해 주신다.
천연색실로 만들고, 그룹들을 수놓아 만든 첫번째 앙장은 서로 금고리로 연결을 시켜 놓아야한다. 봉재기술이 발달되지 않았기에 1폭의 천으로 이어서 만들고 5폭과 5폭은 마주보아 10폭으로 덮개를 완성하여 한 성막을 이루라고 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깊은 주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는다. 실들이 연결이 되어 1폭의 천이 되고, 1폭이 5폭으로 만들어지며, 5폭 5폭이 한 덮개를 완성한다는 것은 오늘날 교회를 이루는 지체된 우리들이 독불장군처럼 홀로 일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앙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고, 지체들이 하나되어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거기에 우리를 지키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천사들까지 함께 함을 볼 수 있다.
염소털로 만든 두번째 앙장은 첫번째것보다 조금 더 크게 만든다. 그리고 염소의 털로 만들기에 이는 속죄일에 사용되었던 "아사셀 염소"를 생각나게 한다. 이 두번째 양장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속죄함의 능력을 기억하며, 나의 죄가 눈과 같이 희게되었음을 기억해야 함을 깨닫는다.
세번째 앙장은 붉게 물들은 수양의 가죽이다. 양의 가죽은 흰색이다. 그렇기에 붉게 물을 들여야만 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의 피를 흘려야 함을 깨달았떤 사람들. 그 진정한 의미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깨달아야 함을 말씀을 통해 배운다. 예수님은 원래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흘리시기까지 죽임을 당하셨다. 그의 몸은 피로 물이 들었다. 양의 가죽을 피로 얼마나 물을 들여야 했을까? 그것도 엄청난 양의 가죽을 말이다. 그 엄청난 양의 가죽을 피로 물들이는 시간을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당한 십자가의 고통과 피흘림을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해달의 가죽 (돌고래 가죽)으로 덮은 앙장은 멋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멋을 위함이 아니다. 우리의 교회도 무엇인가를 세상에 내세우며, 눈에 보이기에 좋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나 또한 목회자로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이 아니라, 겉으로는 볼품이 없어보일지 몰라도, 성막안을 온전히 지키는데 목적을 두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능력이 없이 죽임을 당하는 것 같아 보였을지라도, 그의 죽음으로 우리가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처럼, 세상의 온갖 해로부터 말씀을 전달함으로 성도들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성막을 통해 교회와 성도들과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됨에 감사하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지막 가죽과 같은 사명을 내가 잘 수행해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됨에 감사하다.
그리고 그 해달의 가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고있었던 신을 만든 가죽으로, 이들이 성막 마지막 앙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신을 내어 놓아야만 했었던 것도 기억을 해 본다.
나는 비록 맨발이 될 지라도, 주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기꺼이 감사함으로 기뻐함으로 내어 놓을 때, 주님은 맨발로 가나안에 입성하는 동안 발에 전혀 해를 입지 않게 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하는 믿음이 내게 있어야 하는 것을 깨닫는다.
목회자의 본분을 성막을 계속 연구함으로 다시한번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성막을 하나하나 다시 연구함으로 교회가 성도가, 목회자가 어떻게 주님 앞에서 바른 신앙과 자세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이번 묵상을 통하여서 구체적으로 성막 신앙관이 바르게 세워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