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8월12일2023 #토요일 #사도행전21장1절_14절
바울이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데, 두로에서 상륙하여 제자들을 만났을 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바닷가에서 기도하고 서로 작별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를 때에 딸 넷이 있었는데, 이들이 예언할 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넘겨질 것을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것을 권한다. 바울은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며 자신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당할 뿐 아니라 죽음도 각오하였다면서 권함을 받지 않는다.
사도행전 21: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도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나를 위해 살 때, 나의 뜻이 너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의 삶은 나의 이름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인생이다.
목회자라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는 곳 마다 바울을 다 뜯어 말리는 소리만 하는데, 그럼에도 바울은 끝까지 예루살렘을 고집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부정적인 이야기만을 들을 때, 사람의 감정은 흔들리게 되어있다.
세상에서 지내면서, 세상의 소리를 들을 때, 이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울과 같이 끝까지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결국 내 안에 보이지 않지만,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사명이 무엇인지 확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 길이 힘들고 어려운 길인것을 알지만, 정말 구원받은 내게 주님께서 특별하게 허락하신 일이라고 한다면, 나는 순종해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을 묵상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사실 어제, 어스틴에 오기 전부터 어스틴에 오면서, 그리고 그 이후 교회에 예배당이 생기면서 말씀을 묵상하며 선포했던 부분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왜 이렇게까지 왔을까? 지금의 이 삶이 과연 잘한 것일까?
아이들에게도,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도, 이곳에서의 삶도 실제적으로 어느것 하나 확실하게 좋아진것이 없다.
그런데, 나는 이 곳에 와서 겪는 많은 요소의 어려움 때문에 힘든 것 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것은 복음으로 새로운 생명들이 계속 교회를 통해 살아나는 기쁨을 있기 때문이다.
바울도 이 기쁨의 맛을 이미 보았기에, 환난과 고통이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한 기쁨 때문에, 그 생명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 아닐까?
사실 나는 바울과 견줄수 없다. 그의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마음의 10분의 1이도 안될 수 있지만,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바울을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도 느껴지는 듯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없이 많은 걱정을 뒤로하고, 새로운 생명을 통해 영광받으실 주님을 먼저 생각하며 기쁨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교회의 여러가지 계획들을 세운다.
묵상을 하면서 한가지 결단을 한다. 힘든 상황에서 힘들다고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내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이 너무 많이 있음을 알기에, 힘들 때면, 바울의 예루살렘을 향하는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오르셨던 그 골고다 언덕을 생각하며, 그 이후에 이루실 주님의 일을 기대해보기로 결단한다. 이 길 이후에는 영원한 기쁨이 열매로 맺혀질 것이다.
사랑의 주님.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었던 그 마음을 제게도 주시고, 그 마음이 변치 않게 하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확실한 사명 붙잡고 끝까지 이 길을 기쁨으로 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