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0월20일 #목요일 #창세기37장25_36
유다가 요셉을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자는 의견에 형제들이 동의하고 팔아버린다. 르우벤이 요셉이 구덩이에 없는 것을 나중에 발견한다. 형제들이 요셉의 옷에 피를 적시고 야곱에게 보여주니 애통하며, 자신도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갈 것이라며 슬퍼할 때, 모든 자녀가 위로한다. 요셉은 보디발에게 팔렸다.
창세기 37: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악한 짐승이 되어 누군가를 해치려 하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은 사람을 살리려고 한다" 주님이 말씀해 주신다.
오늘 요셉을 미워하는 형제들의 악한 마음을 본다. 그들은 요셉을 죽이고자 하였다.
하지만 유다는 죽이지 말고 요셉을 팔아버리자고 말한다.
유다의 마음이 다른 형제들보다 착해서 그랬을까? 아니다. 요셉이 팔리게 되면 결국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단지 유다는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요셉을 팔려고 했던 것이지, 그를 죽이려는 마음은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왜 요셉을 그렇게까지 대했을까? 결국은 시기와 질투, 미움이 그들의 마음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유다는 요셉을 통해 자신의 유익을 취하려 했다. 요셉이 어떻게 되던지는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동생을 구덩에서 던져 놓고, 밥을 먹고 있는 형제들이나, 동생을 돈을 받고 노예로 팔아버리는 유다나 모두 악한 짐승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요셉을 팔고나서는 아버지에게 가서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까지 한다.
말씀을 읽으면서 어떻게 형제들이 이렇게 잔인하게 동생을 대하며, 거짓으로 아버지에게 나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편애하는 아버지, 사랑받고 싶어하였지만, 사랑받지 못했던 형제들, 미움과 시기와 질투를 유발하던 요셉의 말과 행동들...
총체적이 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형제들을 악한 짐승으로 만들어갔떤 것이다.
오늘날 세상이 우리를 악한 짐승으로 만들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본다.
나에게 가족을 편애하고, 성도들을 편애하는 모습들은 없는가?
내 안에 다른 이들을 향한 미움과 시기와 질투는 없는가? 또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서운한 마음은 없는가?
또 다른 이들에게 나의 말과 행동으로 시기와 질투를 유발시킨 적은 없는가?
하나 하나 생각해 보면, 어느덧 나 또한 악한 짐승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모두가 악한 짐승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악한 짐승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결국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할 때, 내 마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끌림을 당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자비와 용서, 긍휼의 마음이다. 그분은 악한 짐승이었던 나를 찾아와 주셨고, 용서해 주셨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용서와 긍휼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마음을 가지려면, 먼저 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악한 짐승으로 다른 이들을 대했던 모든 잘못을 회개하고, 성령님을 초청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기로 결단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않는 오늘을 살아고 결단한다. 결국 비교하는 것이 내 안에 악한 짐승이 살아나도록 밥을 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사랑의 주님. 내 안에 악한 짐승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비교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게 하소서.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자비와 용서와 긍휼을 베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