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기자는 주 밖에는 자신의 복이 없음을 알기에 주님께 피하려고 한다. 우상에 대한 어리석음을 알고 있기에 우상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것이 자신의 것이고, 그 기업이 아름답다고 고백한다.
여호와가 자신의 양심을 통해 훈계함을 알고 있기에, 매일 밤마다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의 중심에 여호와가 있기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마음이 기쁘고, 영도 즐겁고, 육체도 안전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여호와로 인해 자신이 멸망당하지 않을 것을 안다. 여호와가 생명의 길이요,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음을 안다.
시편을 묵상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시편기자들의 기도는 참 진실되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해서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기도는 지금 나의 기도의 모습과는 많이 다름을 깨닫는다.
시16: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편기자는 밤마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되돌아 본 것 같다.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훈계하심을 깨달았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 중심에 항상 여호와를 모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나의 마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고 얼마나 많은 설교를 하였는가?
나는 과연 내 마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말씀에 나를 비추어보고 살았는가?
큐티와 오감사를 매일 올리다가, 한국에서 올리지 못한 기간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큐티와 오감사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지 못할 때, 내 안에 죄악의 모습들이 드러남을 나는 또 경험을 하였다.
그 때, 내 마음은 기쁘지 않았고, 나의 영도 즐겁지 않았으며, 내 육체도 온전하지 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마음 중심에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묵상과 오감사를 하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한번 오늘 시편기자와 같이,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나를 훈계하시고 교훈하시는 귀한 시간을 놓치지 않기로 결단한다.
내가 변질되는 것은 순간이다. 순간 내 마음에 주님을 놓치면 일어나게 된다.
내가 주님을 놓치는 그 순간, 물에 빠지던 베드로가 예수를 불렀던 것을 기억하며, 예수를 다시 부르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을 놓치는 방법이 이렇게 쉽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내가 잘해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주님을 놓고 있기에 자꾸 다른 길로 빠지네요.
시편기자와 같이 매일 매일 나를 교훈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말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