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사큐티 #4월22일 #목요일 #출애굽기 8:16-24
3번째와 4번째 재앙인 이와 파리의 재앙이 애굽에 임하였다. 3번째 재앙부터는 요술사들이 하나님의 권능임을 바로에게 이야기 해 봤지만,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강퍅하였다. 결국 하나님은 파리테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인들을 구분하시는 표징을 보여주었고, 그럼에도 마음이 완악한 바로에 의해 애굽 온 천지에 파리떼로 인해 땅이 계속 황폐해졌다.
지금까지 바로는 요술사들이 하나님이 행한 일을 함께 행할 수 있었기에, 충분히 그 마음에 교만함으로 하나님을 무시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요술사들까지도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바로는 여전히 그 마음이 강퍅해져 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왜 그는 이런 엄청난 일들이 있는데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할까?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들은 노예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이다’ 라는 말씀에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안에 내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내가 가진것, 자녀들까지도 주님은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 또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으며 바로와 같은 강퍅한 마음이 있지는 않는지를 찾아본다.
이와 더불어 지금 어스틴 안디옥 교회 예배당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상가 건물 작은 공간이라도 한칸을 빌려서 써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내 조급한 생각을 내려 놓는다. 결국 주님은 내 생각까지도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 아니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도하며 기다려본다.
둘쨰는 바로는 택함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택함 받은 백성이라고, 그들이 구별된 자들이라고 파리떼를 통해 보여주신다.
원래 바로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했고, 자신만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능력함을 철저히 보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자신은 택함받은 자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그에게 느껴질 때, 그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을까?
계속해서 땅은 황폐해져가고 있고, 애굽 백성들을 넘어 자신까지도 하나님의 재앙을 경험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괴감과 수치심이 동시에 몰려왔을 때, 그는 분노로 반응하고 있는 것을 본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베드로전서 2:9 말씀을 통해 택한 백성이라고 말씀을 해 주신다. 감사하다. 하지만 사단은 이런 택함 받은 나를 더욱 더 미워할 것이다. 놓아주지 않으려고 하고, 더 억누르려고 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것은, 구별된 백성으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세상의 압박에 눌리지 않고, 구별해 주신 주님을 끝까지 기억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바로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 부정을 한 이유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택함받지 못한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 보인 분노의 반응 때문임을 깨닫는다.
나도 내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나는 택함을 받지 못한 자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나의 반응이 분노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택함을 받았는데도, 사흘길을 가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과 분노로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했던 것을 기억하자. 그들의 1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앞으로 일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자가 아닌, 주님의 말씀으로 내일의 소망을 두고,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을 살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