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월12일2023 #목요일 #빌립보서1장22_30절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은 것을 알고 있지만, 빌립보 성도들을 위하여 육신으로 있을 것을 확실히 안다고 한다. 그러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증거라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은혜를 주신 것은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도들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다고 한다.
빌립보서 1:27a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잘먹고 잘살기 위해 사는 것만은 아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바울은 이 땅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다른 이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주님께서 그 마음을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합당한 생활을 할 때 가능하다고 한다. 그 삶은 믿음을 주신 것 뿐만이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누가 고난을 좋아할까? 나도 싫다 그 고난...
묵상을 하는 중에 내가 생각하는 고난에 대해 아주 잘못된 정의를 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게 고난이 마치 가난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을 못해주는, 그리고 하고 싶은 사역도 제한 받는...
그런데 주님은 아니라고 하신다.
고난은 싸움이라고 하신다. 무엇에 대한 싸움일까?
세상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어 살아가는 싸움이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 할 수 있어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옥에 갇힌 것이 고난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천국에 빨리 가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이 땅에서의 삶은 고난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땅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 복음을 삶으로 누군가에게 보여 주는 것. 이것이 그에게는 고난의 싸움이었다.
오늘 나의 고난의 정의를 바꾸어 주심에 감사하다.
고난은 가난이 아니다.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마음을, 생각을 참아내고 견디어 내며, 주어진 상황속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말로 "은혜"라고 할 수 있다.
그 은혜의 끝은 우리에겐 이미 주어진 '구원'이기에 말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고난을 피하려 하지 않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고난훈련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 수업이 그리스도가 허락하신 고난을 어떻게 잘 감당할 수 있을지를 배우는 것이 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고난 훈련을 먼저 받고, 성도들에게 이 고난과 은혜의 비밀을 바르게 알려줄 의무가, 사명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 내게 허락된 '수업'을 나를 위한 수업이 아니라, 우리 교회를 위한 '수업'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제게 허락된 고난이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난의 정의를 바르게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