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6월5일2023 #월요일 #예레미야애가1:12-17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자신을 괴롭게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진노는 자신의 골수에 불을 보내시고, 발에 그물을 치셨고, 죄악의 멍에를 묶고 얽어서 자신의 목을 조르게 하시고,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예레미야는 위로하고 회복시켜줄 자가 없음과 오히려 대적자들만 있음을 알고 눈물로 물 같이 흘러내릴정도로 울고 있다.
예레미야애가 1:12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고나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지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죄악이 있는 곳을 볼 때, 네가 해야 할 일은 눈물로 중보하는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오늘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하는 상황속에서 유다의 죄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스스로가 괴로울 정도로 중보하고 있다.
예레미야의 중보는 하면 할 수록 자신에게 더 힘이 들기만 한 기도였다. (기도를 하면 할 수록 절망이었기 때문이다) 유다를 위해 기도하며 나아가는 그 마음이 자신의 골수에 불이 타는 듯한 고통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해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과 같이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되어가고, 기도중에 자신의 죄악을 보게 하심으로 그 죄악이 자신의 멍에가 되었음을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더이상 유다의 미래를 찾아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현실에서는 절망밖에 없음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유다가 끝까지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손을 폄으로, 여호와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대적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알며,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마르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중보자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비교하게 되었다.
예레미야는 유다를 위해 기도하면서, 고통과 아픔을 느끼고, 처절한 상황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고,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짖었다. 도저히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응답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 고통중에도 주님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여전히 유다는 하나님을 붙잡지 않고 주변국들에게 손을 벌린다. 여호와 하나님은 주변국들이 오히려 대적이 되게 하셨다.
내가 누구를 의지해야하는지를 알게 하시는 주님을 본다.
사람을 의지하면, 그들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동안 내가 기도를 할 때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유다를 향한 예레미야의 마음으로 중보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나에게 고통과 아픔이 전달되어진다고 하더라도,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신다.
왜 내가 다른 이들을 위해 그렇게까지 기도해야하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의 담임이기에, 한 가정의 가장이기에, 그리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기에 나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예레미야와 같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다. 스스로를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다.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중보하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왜 하셨을까?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도 유다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앞에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한 것이다.
주님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사명을 주신다.
나의 눈물의 기도를 원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신다. 새벽마다 드리는 기도가 달라지길 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다시 기도 제목과 리스트를 바꿔보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예레미야의 기도가 저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성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하게 하시고, 기도가 고통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