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2월14일2024 #수요일 #마가복음14장32절_42절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올라가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머물러 깨어 있으라 말씀하시고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신다. 그리고 이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자신의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하게 해 달라 기도하신다. 기도하신 후 돌아와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냐고 하시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신다. 이 후 또다시 기도하러 가셨다가 다시 와서 보니, 그들이 자고 있었고, 세번째 기도를 하고 오셔서는 이제는 자고 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자신을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며 내려가자 하신다.
마가복음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피곤한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 죽게 되었으니, 이를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부탁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시험이 언제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육신이 연약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기도를 하고 싶어도 기도를 하지 못하게 되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육신의 편안함을 먼저 찾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육신의 편안함만을 찾다보면 주님을 찾는 시간이 없다. 주님께 기도하지 못한다.
결국 내 생각대로 나의 육신의 편안함을 먼저 찾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기도하는 소리가 점점 줄고 있다는 말을 한다. 왜 그럴까?
우리 육신의 편안함을 먼저 찾는 자리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기도가 나에게 쉼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하면 피곤하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내게는 불편한 시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기도하지 않으니 시험에 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도 시험에 드는 것 아닐까? 기도하며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없으니, 불안하고,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교회에 대한 불신으로 주님께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시험에 든다.
그럼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을까? 그렇다. 시험에 들 수 없다.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욕심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통해 이루시길 원하는 기도를 하고, 그분의 뜻을 알면 시험에 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시도하지 않고 말하지 않기로 한다. 기도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않기로 한다. 말씀에 순종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기로 결단한다.
그렇게 기도할 때 나의 믿음이 상황에 흔들리지 않게 될 줄로 믿는다.
오늘도 기도를 한다. 내가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기를, 내가 원하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랑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길 원합니다. 나의 원대로 인생을 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기도하지 않고 기도의 능력에 대해 논하지 말게 하시고,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음을 경험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