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8월14일2023 #월요일 #사도행전21장27절_40절
바울이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에게 오해를 받고, 그들에게 잡혀 성전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때에 군대의 천부장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왔을 때에 바울 치는 것이 그쳐졌다. 천부장은 바울을 우선 잡아 놓고 그 진상을 조사하는데 사람들 말이 다 틀려 알 수가 없어서 영내로 데려가려 한다. 이 때 바울은 천부장에게 자신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 후, 기회를 받아 말하기 시작한다.
사도행전 21: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이래도 너는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니?" 주님이 물어보신다.
바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바울은 잘못한 일이 없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바울을 공격한다. 그 오해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으로 생기게 된 것이다.
복음을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바울은 예수가 메시아라고 하니 싫었던 것이다.
오늘날을 생각해본다. 예수가 내 삶의 주인되신다고 선포하면,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가르치는 세상이기에,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경계의 대상이 된다.
복음을 들어보지도 않고, 경험해 보지도 않고, 그냥 잘못되었다는 오해를 통해 핍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 앞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죽임을 당할 뻔 하였음에도 맞서 싸우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그 와중에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기회만을 찾는다.
나라면 가능했을까?
나는 오해받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바울이었다면 그렇게 오해 받고 있는 상황들을 알고 있기에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먼저 시도해 보려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바울은 이미 이들의 증오로 인해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상황이 아님을 알았기에 맞으면서도 기회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바울을 쫓아가기에는 멀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나는 내 오해를 먼저 푸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다림의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교회 안에서 오해가 생기더라도, 가족간에 오해가 생기더라도 기회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자.
때로는 오해를 풀기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기다려보기로 결단한다.
내가 먼저 스스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 상대방도 들을 귀가 생길 수 있기에 그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단한다.
오늘 하루 혹여라도 오해 받는 일이 생긴다 하여도, 나의 오해 푸는 것을 넘어 그 일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가 만들어지길 기도해 본다.
사랑의 주님. 제가 오해를 당하게 되는 일이 있을 때, 내 감정에 못이겨 억지로 오해를 풀려고 하지 말게 하소서. 기다리고 기다려 도움의 손길을 통해 오해가 풀릴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시고, 오히려 그 기회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