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악을 저지른 이스라엘은 미디안에게 칠년동안 침략을 당한다. 이스라엘은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었고, 파종때에는 항상 침략을 당하여 양식과 가축이 남아남질 않았기에 궁핍이 심해졌다. 이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여호와께서 한 선지자를 보내서 이스라엘의 인도하심과 명령하심에 대해 다시 기억나게 하시고, 그들의 불순종에 대해 지적하신다.
사사기 6: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등따스고 배부르니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본다. 자신이 살만하면 은혜를 베푼 하나님의 은혜도 잊고,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죄인된 사람의 본성이다.
그런데 자신의 형편이 괜찮아지만 가장 먼저 잊는 것이 가장 가까이에서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참 뻔뻔하다고 생각이 들정도다. 여호와의 은혜를 어쩜 이리 잘 잊고 배신하며 살다가, 힘들어지니 다시 여호와를 찾았을까?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이런 마음을 주신다. "민우야 그래도 나를 다시 찾는 것이 그들에게 남아있었던 희망이었다면, 그것으로 그들은 소망이 있지 않겠니? 너는 어떠니? 나를 찾아야 할 때에 찾지 않은적이 없니?"
이런 음성과 함께 돌아온 탕자를 생각나게 하신다.
아버지에게 불효를 저지르고, 정말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결국 아버지의 집에 종으로라도 들어가면 죽지는 않을 수 있겠다 싶어서 돌아간 탕자. 그래도 그에게는 돌아갈 용기라도 있었던 것이다.
용기가 없다는 핑계로, 이런 날 받아주실까? 라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을 때가 훨씬 더 많이 있었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신 것이다.
용기가 나지 않을 때, 두렵고, 떨림이 있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부르면 그분이 나를 만나러 와 주신다.
나의 잘못된 모습도 알려주시면서 말이다.
감사하다. 주님은 나를 놓치 않으시고, 내가 부를 때, 언제든지 함께 해 주시겠다 말씀해 주시니 말이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가본다.
주님 매일 매일 주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나의 모습. 하지만 그것을 꺠닫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아야 함을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호와를 찾고 부르짖는 훈련이 계속 필요하오니, 나의 상황속에서 주를 찾을 때를 깨닫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