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월24일2024 #수요일 #마가복음9장2절_9장13절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셨다. 그곳에서 예수의 옷이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을 본 무서워하며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실 때,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것을 경고하시니, 제자들이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다 하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몰라 엘리야에 대해서 묻고, 예수님은 대답해 주신다.
마가복음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네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하여 예수가 온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옷에 광채가 나며, 이 땅에서 볼 수 없는 천국의 일들이 눈 앞에서 펼쳐졌으니 말이다. 베드로는 그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그 때 예수께서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려주신다. 구름이 몰려와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릴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는 말씀, 그리고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 말씀. 뭔가 뜻이 있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하시는 말씀이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야 한다" 는 말씀을 하셨다.
천국의 모습을 보았는데, 이 땅에서는 전해 반대의 상황에 처하게 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천국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을까?를 질문을 해 보게 되었다. 현실의 삶은 전혀 다른데,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십자가 사건은 변화산에서의 예수님과는 너무 대조되는데 말이다.
묵상을 하며 깨닫는 것은, 베드로가 그 천국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성령을 받고 난 이 후, 순교의 삶까지도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이기에 어려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도 많이 있었고, 넘어질 때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난 후에는 그는 오직 천국의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었음을 기억해 본다.
나를 돌아본다. 나도 매일 매일을 천국에서와 같이 살아가고 싶다. 예전을 생각해보면, 수련회 같은 곳에 가면, 천국이 따로 없었던 것 같다. 매일 매일 예배하고,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로 내려오면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연약함이 아닐까?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런 변화산에서의 사건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을까?를 질문 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그들이 주님과 그곳에서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을 허락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묵상중에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과 질문이 생각이 난다. ' 그 천국의 삶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너는 그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천국의 삶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너는 이미 천국의 확신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제 그 삶을 모르는 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함으로 천국을 소개해 줘야하지 않겠니?'
베드로에게도 변화산에서의 삶보다, 그가 깨달은 천국의 소망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듯이, 주님은 오늘 나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시는 것 같다.
나를 위해 천국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하시는 마음을 전달해 주시는 것 같다.
내가 그토록 소원하는 천국의 삶. 나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주님이 택하신 자들을 위한것임을 기억하고, 오늘도 은혜로 말씀을 나누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오늘 하루 천국의 소망을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천국을 소개함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예수가 없는 이들에게도 주님의 영광을 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