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8월20일 #토요일 #창세기11:1-9
온 땅의 언어가 하나고 말이 하나였던 때에, 사람들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고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였다. 여호와께서 내려오셔서 그 모습을 보시고 언어를 혼잡하여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기에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다.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
창세기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너의 이름 말고 너를 통해 내 이름을 내면 안되겠니?" 주님이 물어보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이사야 43:7 절에 기록된 것 처럼, "나의 영광을 위하여", 즉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말씀을 해 주신다.
그런데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 보다는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많이 있음을 본다.
나를 알아주면 좋겠고, 내가 유명해지면 좋겠고, 나의 영향력이 커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 안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을 하는 것이다.
조심스레 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나는 목회자로 나를 드러내려고 했던 적은 없었는가? 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실제로 거리를 다니다가 다른 교회 교인이 나를 알아봐주시기라도 할 때면, 어느새 내 어깨가 올라가있곤 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런 나를 절대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지음받은 목적을 상실하고 살아가게 되면, 그 때부터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잡을 공간은 더이상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나의 이름'이 아닌 '여호와의 이름'을 드러내고 살 수 있을까?
사실 미국교회에서 찬양인도를 하고 나면 내게 찾아와서 여러 칭찬을 해 주시는 분들을 만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당연히 내 안에 교만이 다시 올라오려고 하기도 한다. 이런 나를 알고 있기에 나는 결단한 것이 있었다. '말'이다. 칭찬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주님이 행하시는 일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물론 진심을 담아서 말이다.
나는 미국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할 만큼의 언어와 실력이 있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주님이 쓰시는 그 자리에서 순종 하고 나갈 뿐이고, 이 모든 것은 주님이 허락하신 은혜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기에,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행하셨습니다" 대답을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오늘 순간 순간에도 일어나길 원한다.
나의 이름을 위하여가 아니라, 나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내기 위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우선 나의 말부터 변해야 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주님의 영광을 위한 말로 바꾸어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며 나아가기로 결단한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기에, 내 진실된 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날 줄로 믿는다.
사랑의 주님. 이 땅에 살면서 '제 이름'을 드러내지 말게 하소서. 저를 통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