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월17일2023 #화요일 #빌립보서3장10_21절
바울은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해서 죽은자 가운ㄷ게서 부활에 이르려고 달려가는데,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말한다.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면서, 여러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데, 그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고, 멸망할 자들이라고 한다. 믿는자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만물을 자기에게 복조앟게 하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기다리신다고 말한다.
빌립보서 3:10-11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모든 믿는자는 바울과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해야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해야 한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를 계속 묵상하고 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이 땅에서의 삶은 죽은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고, 땅의 일을 생각하여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자들. 즉 예수가 없는 자들은 죽은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또 '죽은 자'를 생각해 볼 때, 지나간 일들에 집착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자들도 죽은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그렇기에 그 날을 기대하며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일들로 오늘을 불평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 또한 '죽은 자'들인 것이다.
이런 이들 속에서 나는 부활에 이르려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것인가?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부르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푯대가 내 안에 있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가 보다는 누구를 위해 달려가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다른 이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교만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본받으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딸에게 나중에 결혼할 사람을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라고 이야기 해 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는 혹시라도 타주나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하게 될 때, 다른 목회자를 만나야 한다면 '저와 같은 목회자를 만나세요'라고 말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아빠로, 바른 목회자로 서 있다면, 사도바울과 같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는 자 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렇게 말할 자신이 있는가?
솔직히 나는 다른 부분에서는 한없이 부족한 것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만큼은 딸에게도 성도님들에게도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도 된다 말씀을 해 드리고 싶다. (물론 내 마음은 나 보다 더 큰 믿음과 사랑을 가진 분들을 만나기를 더 바라고 기도해 드릴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싶다. 적어도 나만큼의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자는 만나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는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성령을 구하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기에, 이 흔들림 없는 믿음이 없으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저녁에 딸에게 한번 물어보고, 말을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의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 마음이 다른이들에게 본이될 수 있게, 어제의 은혜에 머무르지 말게 하시고, 날마다 새로운 은혜로 다시오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