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5장1절-14절
바로 앞에선 모세와 아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바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듣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뭐가 화가났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심하게 고통을 준다.
출애굽기 5: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바로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른 신, 그것도 자신의 노예들의 신이 나타나서 바로의 명보다 더 따르려하는 상황을 보면서 화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나님 없는 자의 특징을 본다. 자신이 신이 되어 살아간다. 자신의 판단이 옳고, 자신의 방법과 경험이 맞다고 생각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무엇인가가 나타나면 그것을 세상의 방법으로 누르려고 한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나타난 반응 2가지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고, 회개하고 주인을 바꾸는 삶이거나, 외면하고 배척하고,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대적하는 모습이다.
바로도 복음 앞에 대적자의 모습이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요8:32)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복음 앞에 주인을 내어 드리는 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와 반대인 바로는 진리의 선포로 인해 더욱 더 사단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바울의 마음을 강퍅케했다고 말씀은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진리가 들리면 들릴 수록 더욱더 마음이 묶여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안에 '바로'를 찾아본다. 나는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아내가 말씀에 비추어 맞는 말을 하는데도, 내가 듣기 싫으말이면, 오히려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로 나가는 경향이 종종있다. 속이 좁은 것일 수도 있고, 자존심의 문제일 수도 있어서일까?
아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안에 있는 '바로의 죄성'이 내게도 있기 때문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목사라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고,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허락하시는 말씀에 무조건 아멘!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의 설교를 들으면서 '판단'하고 있는 나의 죄성도 동시에 보였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에 주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떄문인것이다. 이것을 찾아 뿌리뽑아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죄인이고 연약하기에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내 안에 성령을 초청한다. 그 성령의 불로, 내 안에 '바로의 죄성'을 모두 태워주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가 선포되면, '아멘!'하고 무조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도한다.
결국 성령의 충만함이 내 안에 채워져,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된 삶을 살아야한다. 이를 위해 시간을 정해놓고 다시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기로 결단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