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0월22일2024 #화요일 #갈라디아서3장1_9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알면서 육체의 행위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자들의 꾀임을 받는 이들에게 어리석다 이야기를 한다. 성령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자들이 있으면 안된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그와 같은 복을 받는다.
갈라이아서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거짓 교사에게 현혹되어 율법으로 의를 추구하지 말게 하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바울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울까를 생각해 보게 하신다. 사실 바울의 심정보다 더 안타까운 분은 예수님이 아니셨을까?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율법의 행함으로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게 만들어 버린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였지만, 거짓된 가르침과 속삭임에 성령의 충만함은 잊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에 바빴다.
결국 이로 인해 교회 안에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은 다른이들을 판단하는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말씀에서 떠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세상적이고, 율법적인 것들로 문제를 삼아버린다. 그 중심에는 "자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영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를 떠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잣대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것을 바울은 육체로 마치려는 자들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무엇으로 시작이 될까? 결국 은혜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부분이 많이 있음을 본다.
사실 당시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은 행함에 대한 판단이요, 그 기준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생각으로 교회의 전통이라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은혜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전 삶에서 변화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이전과 같이 행함으로 무엇인가를 판단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들이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 있었던 거짓 교사들과 같은 부류의 이들이다.
의로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일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밖에는 없다. '내 생각에는...' 이라는 말이 사람을 잡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모습이 내 안에 있음을 또 보게 하신다.
다른이들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 자체가 성령의 충만한 이들의 모습이 아니라, 육체로 행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안에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마음이 들 때,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지금 나를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한다. 나의 그런 자아로 인해 시작된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신 그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값없이 주신 은혜를 나는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흘려보내고 있는가?
물론 분명히 교회의 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 부분은 내 개인 생각의 판단이 아니라,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그 다음의 절차가 들어가야 하지만, 그런 일들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절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내게 어리석은 행함과 생각을 그치라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하다. 누군가를 정죄하기 이전에 예수님이 나를 안타까워하시는 그 마음을 생각하며 입술을 닫는 하루가 되길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이들을 보면서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한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여, 개인적인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보다 앞세워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기준삼지 말게 하소서. 오늘도 입술을 닫게 하시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중보하며, 주님 주신 은혜만을 흘려보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