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2월20일 #월요일 #욥기 37:14-24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구름과 번개, 땅, 바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아는지를 묻는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을 도울 수 없다 말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나님께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두려운 위엄이 있고, 우리는 전능자를 찾을 수 없는데, 하나님의 권능이 커 정의나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기 떄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해야하고,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이들을 무시한다 말한다.
욥기 37: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사람이 고통중에 신음하며 탄식하는 소리와 나를 멸시하며 경외하지 않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이 말씀해 주신다.
엘리후는 욥의 말이 계속 거슬렸기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라고 생각하고, 또 스스로 지혜있다고 말하였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은 '그렇게 말한 욥에게 아무 대답이 없는 것은 욥을 무시'하기 때문 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든 일을 당연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엘리후는 하나님의 일을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사람이 그분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시고, 소통하길 원하신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가까이 하기 원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셨고,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길 원해서였다.
엘리후가 이 사실을 몰랐기에 욥이 하나님과 대면하려는 말을 하는 것 조차 악한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들을 무시하기보다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들도 구원받아야 할 자들이기 때문이다.
욥은 하나님과 이 부분을 이야기 하고 싶어했기에 주님을 대면하고 싶어했던것이 아닐까?
물론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어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답답한 마음을 가진 욥에게 엘리후는 너무 지식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엘리후라면 무엇을 이야기 해 주어야 할까?
고통중에 신음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하나님이 어떻게 들어주셨는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신음을 들으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함께 기도해주어야 했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정말 고통중에 주님을 만나고 싶어서 부르짖는 것인가? 아니면 고통중에 하나님을 욕하는 것인가? 바른 분별로 인해 하나님을 소개해 주는 것이 영적인 분별력임을 깨닫는다.
사랑의 주님. 제게 영적인 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전해야 하는 말씀과, 고통중에 주를 찾는 자들에게 전해야하는 말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