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7월5일2023 #수요일 #사도행전7장51_8장1절
스데반이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의 죄를 지적한다. 성령을 거스르고 있다고 하며, 선지자들을 박해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살인한 자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린 자들은 이를 갈고,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서셨다고 하니 사람들에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치니, 스데반은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받아달라고 하고,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하고 죽게 된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이 여기고, 그로 인해 교회에 박해가 시작되었다.
사도행전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열매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일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스데반은 자신이 풀려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외친다. 결국 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스데반을 돌로 치게 되지만, 스데반은 마치 예수님 처럼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 기도하고 아무런 반전이 일어나지 않고 스데반은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복음을 외치고, 회개를 외치고, 약속의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외쳐도 스데반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이었다.
반전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왜 스데반의 죽음으로 마무리가 된 것 같을까?
말씀을 묵상하면서 계속 반복되는 질문을 하는 중에 용서의 삶, 반전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신다.
용서의 삶은 나의 생명을 내어 주는 삶이다. 나를 죽여야 하는 삶이고, 손해보아야 하는 삶이다. 나에게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삶이다. 더 나아가, 내가 용서를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변화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용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어렵다. 복음을 전하고, 용서하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을 살아내는 삶인데, 정말 어려운 삶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미 구원받은 자라면, 예수의 마음으로 저들도 구원을 받아야 함을 깨닫게되니, 그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눈에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말이다.
그럼 그 열매는 언제 알 수 있을까? 복음을 아무리 전해도 상황은 전해 반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 열매는 주님이 맺어 가실 것이다.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 사울도, 그를 죽이기 위해 돌을 던지 자들에 의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더 해져 갔음에도, 주님은 복음이 더 확장되게 하셨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열매를 바라며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고 회개를 외쳐야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그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나는 구원을 받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길을 주님 오실 때까지 걸어갈 것이다.
사랑의 주님. 제가 왜 이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며, 열매를 보기 위한 사역이 아닌, 내게 주어진 사명만 감당하는 날 되게 하소서.